<간략한 제국 역사 1권 - 저자 : Stronach K'Thojj 3세 (임페리얼 역사가)>
타이버 셉팀의 통치가 시작되기 전, 타므리엘 전역은 대혼란 속에 있었다. 대시인 트라시지스는 그 끊임없는 불안의 시대를 "피와 독의 낮과 밤" 이라고 불렀다. 그 땅에 질서를 가져오려는 타이버의 시도에 맞서는 왕들은 탐욕스러운 군소폭군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합지졸이었고, 셉팀의 강한 지배력은 타므리엘의 강제적인 평화를 불러왔다. 그 해가 2E 896년 이었다. 이듬해 황제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선포했다.
- 0년, 세번째 시대는 이와 같이 시작되었다.
38년동안 타이버 황제는 최고의 통치를 했다. 농노에서 군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정의의 가치가 알려진 합법적이고, 경견하고, 영광스러운 시대였다, 타이버가 죽었을 때는 마치 타므리엘 대륙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2주일 동안 쉬지않고 비가 내렸다.
황제의 손자, 페라지우스는 권좌에 오르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짧았지만, 그의 아버지 못지 않게 강하고 단호했고, 타므리엘은 황금 시대를 계속 누릴 수 있었다. 아아! 셉팀 가문의 알려지지 않은 적이 저 저주받은 자객 집단인 어둠의형제단을 고용해서, 제국 수도의 템플오브더원에서 기도를 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잇는 페라지우스 1세 황제를 죽인 것이다. 페라지우스 1세의 통치는 3년이 채 안되었다.
페라지우스는 자식이 없었고, 그래서 제국의 황위는 그의 첫번째 사촌, 타이버의 형제인 아그노리쓰의 딸에게 넘어갔다. 카인샤, 실베나르의 첫번째 여왕은 카인샤라 1세로 권좌를 이었다. 그녀의 통치는 번영과 풍작으로 축복 받았고, 그녀 자신은 예술과 음악과 춤의 열정적인 후원자였다.
카인샤라가 죽은 뒤 황위를 물려받은 그녀의 아들은 유리엘이라는 황명을 사용한 타므리엘의 첫번째 황제가 되었다. 유리엘 1세는 셉팀 왕조 의 위대한 입법자였고, 독립적인 조직들과 조합의 장려자였다. 그의 온화하지만 단호한 지배 하에서 전사조합과 마법사조합은 타므리엘 전역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유리엘 2세는 유리엘 1세가 죽은 3E 54년에서 페라지우스 2세의 즉위인 3E 82년까지 18년간 통치했다. 비극적이게도, 유리엘 2세의 통치는 마름병과 전염병과 폭동에 의해 저주받았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유약함으로 인해 타므리엘을 재대로 통치하지 못했으며, 정의가 거의 실현되지 못했다.
페라지우스 2세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권좌 뿐만 아니라, 열악한 재정과 법적 처리까지 부채로 물려받았다. 페라지우스는 장로평의회 전부를 해산하고 그 자리에 다시 앉기 위해 엄청난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만 인정했다. 그는 그의 봉신인 타므리엘의 왕들도 이와 같은 행동을 할 것을 장려했고, 그의 17년의 통치가 끝났을때, 타므리엘은 다시 번영하게 되었다. 그런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지례를 가진 조언자들도 페라지우스에 의해 간단히 쫒겨나게 됐다는 것에서 비판을 받았다. 이것은 그의 아들 안토슈스는 보통 엄격햇던 셉팀가문에서 좀 특이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수많은 정부들과 그와 비슷한 수의 부인들이 있었고, 유머와 화려한 복장으로 유명했다. 불행하게도, 그의 통치 중 그의 할아버지인 유리엘 2세조차 놀랄 만한 내란이 만연했다. 안토슈스가 왕좌를 계승하고 12년 후인 3E 110년에 섬 전쟁에서는 써머셋 섬 지방이 타므리엘로부터 거의 독립을 했다. 써머셋의 왕과 안토슈스의 연함동맹이 변덕스러운 폭풍 덕분에 섬나라 판도니아의 오쿰 왕을 가까스로 물리칠 수 있었다. 전설은 대혼란의 이면에 알테움 섬의 파시직 교단이 가지고 있던 사악한 마법이 있었다고 전한다.[앞뒤가 안맞군요. - 옮긴이]
아버지 안토슈스의 권좌를 물려받은 딸, 카인샤라 2세의 이야기는 확실히 제국 역사에서 매우 슬플 이야기중 하나이다. 그녀의 첫번째 사촌, 솔리튜드의 여왕 포테마의 아들 유리엘읜 카린샤라가 사생아 인것을 그녀의 아버지의 통치기간동안 제국 수도의 수치스러운 타락을 암시한다고 비난했다. 그녀의 즉위를 방해하려는 비난이 실패하자, 유리엘은 하이록, 스카이리움, 그리고 모로윈드의 불만을 품을 몇명의 왕들의 지원과 포테마 여왕의 원조를 받아 셉팀 제국을 세차례 협공하였다.
첫번째 공격은 아이리악만(灣) 지역에서 일어났고, 그것은 하이록과 바머펠을 분리시켰다. 카인샤라의 측근들은 학살되었고, 여제는 사로잡혔다. 카인샤라 2세는 작은 독방에서 알 수 없는 사건으로 살해되기 전가지 2년 동안 글렌포인트나 글렌모릴 어딘가라고 여겨지는 제국의 감옥에서 욕고를 치렀다. 두번째 공격은 모로윈드 섬의 연안은 따라 제국 수비군과의 연전이었다. 여제의 남편인 칸틴 아린스가 요새를 방어하다 전사했다. 세번째이자 마지막 공격은 장로 평의회가 군대를 분할하여 하이록 서부와 모로윈드 동부를 공격한 후 제국 수도를 포위공격하였다. 약해진 정부는 유리엘의 결연한 침략을 거의 방어하지 못했고, 겨우 2주 동안 저항한 후에 항복했다. 유리엘은 그날 저녁에 권좌에 올랐고, 자신을 타므리엘 제국의 황제 유리엘 3세로 선포했다. 그 해가 3E 121년이었다. 이 시리즈의 2권에 기술된 붉은 다이아몬드 전쟁은 이와 같이 시작되었다.
<간략한 제국 역사 2권 - 저자 : Stronach K'Thojj 3세 (임페리얼 역사가)>
이 시리즈의 제 1권에서는 영광스러운 타이버 셉팀의 시작과 그의 조카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손녀 카인시라 2세의 최후까지 셉팀 왕조의 처음 여덟 황제들의 간략한 삶은 기술했다. 글렌포인트 감금 기간동안의 카인시라의 시해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순수 셉팀 혈통 황실의 종말로 생각된다, 확실히 이 사건은 무언가 의미심장해 보이는 종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유리엘 3세는 스스로를 타므리엘의 황제로 선포했을 뿐만 아니라, 유리엘 셉팀 3세라는 유명한 성도 칭호로 가졌다. 사실, 그의 성은 그의 부계로 이어진 만샤르코였다. 결국, 유리엘 3세는 폐위되었고, 그의 범죄들은 비난 받았다. 그러나 전통에 의해 타므리엔 황자의 칭호로서 가졌던 이름 셉팀은 그와 함께 사라지지는 않았다.
6년 동안, 붉은 다이아몬드전쟁(이것은 셉팀 가문의 유명한 휘장에서 유례했다.)은 제국을 분열시켰다. 전투원들은 페라지우스 2세의 생존한 세 자식들(포테마, 시보루스 그리고 마그누스)과 그들의 여러 자손들이었다. 물론 포테마는 그녀의 아들 유리엘 3세를 지지했고, 스카이리움 전체와 모로윈드 북부가 연합하여 지지했다. 시보루스와 마그누스가 고군분투했지만 하이록 지방이 변질되어버렸다. 바머펠, 써머셋 섬, 발렌우드, 엘스웨일 그리고 블랙마쉬 지방은 그들의 사이의 충돌 때문에 갈라졌지만, 대부분의 왕들은 시보루스와 마그누스를 지지했다.
3E 127년, 유리엘 3세는 바머펠의 아이쉬닥 전투에서 생포되었다. 제국 수도에 있는 재판소에 가는 길에 폭도들이 그의 호송차를 따라잡아 산채로 호송차와 함게 태워버렸다. 그의 체포자이자 삼촌은 제국 수도에 계속 머물렀고, 군중의 환소 속에 타므리엘의 황제 시보루스 1세로 선포 되었다.
시보루스의 통치는 전쟁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특징도 없었다. 모든 기록에 의하면 그는 칠절하고도 지적인 사람이었지만, 타므리엘이 필요했던 것은 위대한 전사였다, 그리고 그는 다행히 그 뜻을 따랐다. 그는 그의 누이 포테마 폐비 사건[이부분 모르겠네. - 옮긴이]과 추가적인 10년 간의 끊임 없는 전쟁을 요구했다. 이른바 솔티튜드의 늑대여왕은 137년 그녀의 도시국가 포위공격에서 사망했다. 시보루스는 누이보다 겨우 3년 더 살았다. 그는 전쟁 기간 동안 결혼할 시간이 없었고, 그래서 권좌는 페라지우스 2세의 네 번째 자식인 그의 동생에게 돌아갔다.
마그누스 황제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는 이미 초로에 접어들었고, 붉은 다이아몬드 전쟁에서 반역한 왕들을 처벌하는 사업은 그의 남은 힘을 거의 소진시켰다. 전설은 마그누스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페라지우스 3세의 부친 살해를 비난하지만, 매우 믿기 힘들어 보인다.
페라지우스가 죽은 포테마 여왕을 이어 솔리튜드의 왕이 되었고, 좀처럼 제국의 수도에 방문하지 않았던 것 이상의 다른 이유는 없었다.[응?? 뭔소리..? - 옮긴이]
간혹 미치광이 페라지우스라고도 불리는 페라지우스 3세는 세 번째 시대의 145번째 해에 황제로 선포되었다. 거의 시작부터, 그의 기이한 행동은 궁정에서부터 고관들을 난처하게 했고, 그의 봉신 왕들을 화나게 했으며, 그리고 언젠가 인페리얼 그랜드 볼 끝에 그 스스로를 매달려는 시도로 주의를 끌었다. 그의 인내심 많은 아내는 결국 타므리엘의 섭정직을 수여 받았고, 펠라지우스 3세는 3E 153년에 34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일련의 치료 시설들과 정신병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타므리엘의 섭정 황후는 그녀의 남편이 죽은 뒤에 여제 카사리아 1세로 선포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카인샤라 2세의 죽음이 셉팀 혈통의 종말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타크 엘프 여인의 득세가 진정한 종말을 표시한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그녀의 옹호자들은 카사리아가 타이버의 자손이 아니더라고 그녀와 페라지우스 사이의 자식은 그랬기 때문에 제국의 혈통은 계속 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다는 인종차별 주의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카사리아의 46년간의 통치는 타므리엘 역사에서 큰 축복이엇다. 제국 수도에서 마음이 편치 못했던, 카사리아는 타이버 시대 이래로 어떤 황제보다 제국의 구석구석까지 널리 여행했다. 그녀는 선대 황제의 깨어진 동맹과 망가진 외교관계의 많은 피해를 회복했다. 타므리엘의 사람들은 귀족이 그랬던 것 보다 더 그들의 여제를 사랑하게 되었다. 블랙마쉬의 하찮고 사소한 충돌에서의 카사리아의 죽음은 음모론을 좇는 역사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이다. 대현자 몬타리우스의 발견을 예로 들면, 특권을 박탈 당한 셉팀 가문의 분파, 그리고 블랙마쉬의 사소한 충돌과 분파의 연관은 확실히 뜻밖의 사실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죽은 후 카신더가 권좌에 올랐을 때 그는 이미 중년이었다. 하프 엘프일 뿐인 그는 브리튼처럼 나이를 먹었다. 사실, 그는 좋지 않은 건강 때문에 그의 이복 형제 유리엘에게 웨이레스트의 통치권을 넘겨줘야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라지우스의 유일한 순수 혈족, 요컨데 타이버의 혈족으로, 권좌를 수락할 것을 강요 당했다. 카신더 황제의 통치가 길지 않았다는 것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2년 만에 그는 영원한 잠으로 그의 조상들과 만났다.
유리엘 라리엇, 세신더의 이복형제이며 카사리아 1세와 그녀의 황실 부군 갈리비어 라리엇 사이에서(페라지우스 3세가 죽은 후) 낳은 작인에게 유리엘 4세소서 눼이레스트 왕국의 통치가 맡겨졌다. 법적으로 유리엘 4세는 셉팀이었다. 그가 웨이레스트의 왕이 되었을 때 카신더가 그를 황실로 입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의회와 타므리엘 사람들에게 그는 카사리아의 사생아였다. 유리엘은 그의 어머리의 세력을 손에 넣지 못했고, 그의 긴 43년간의 통치는 폭동의 은상이었다.
유리엘 4세의 이야기는 이 시리즈의 3권에서 이야기 하겠다.
<간략한 제국 역사 3권 - 저자 : Stronach K'Thojj 3세 (임페리얼 역사가)>
이 시리즈의 제 1권에서는 타이버 1세에서 카인시라 2세까지 셉팀왕조의 처음 여덟 황제들의 황위 계승 이야기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 했다. 제 2권에서는 붉은 다이아몬드전쟁과 전쟁 직후의 유리엘 3세에서 카신더 1세까지 여섯 황제에 대해 기술했다. 제 2권의 뒤 부분에 카신더 황제의 이복 형제 유리엘 4세가 타므리엘 황제의 권좌에 어떻게 올랐는지 기술했다.
유리엘 4세가 태어날때는 셉팀 가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여러 해 동안 황후로 통치했지만, 페라지우스 3세, 순수 셉팀 황제와 결혼한 다크 엘프였다. 유리엘의 아버지는 사실 페라지우스가 죽은 뒤의 남편으로 갈리비어 라리엇 이라는 이름의 브리튼 귀족이었다. 황제의 권좌에 오르기 전에 카신더 1세는 웨이레스트 왕국을 통치했지만, 좋지 못한 건강으로 인해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카신더는 자식이 없었고, 그래서 그의 이복 형제 유리엘을 법률상의 양자로 삼고 폐위햇다. 7년 후에, 카신더는 그의 어머니의 죽음으로 황위를 물려 받았다. 그 3년 후에, 유리엘은 다시 한번 카신더의 우선 상속자임을 알게 된다.
유리엘 4세의 통치는 길고 험난했다. 셉팀 가문에 합법적으로 입양된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라리엇 가문의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실제로 그들은 셉팀의 먼 사촌이었다.) 타이버의 완전한 혈손으로서의 그를 인정한 장로 평의원은 거의 없었다. 평의회는 카사리아 1세의 긴 통치와 카신더 1세의 짧은 통치 동안 보다 많은 책임을 맡았다. 유리엘 4세 처럼 완고한 "외계인" 군주는 그들에게 확고한 충성을 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번번히 평의회와 황제는 대립했고, 그리고 번번히 평의회는 그 싸움에서 승리했다. 페라지우스 2세의 시대 이래, 장로 평의회는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남녀들로 구성되었고, 그들이 휘두르는 권력의 힘은 막강했다.
평의회의 유리엘 4세에 대한 최후의 승리는 그가 죽은 뒤에 일어났다. 앤도라크, 유리엘 4세의 아들은 평의회의 투표에 의해 계승권이 박탈되었고, 원래의 셉팀계에 더 가까운 사촌을 3E 268년에 시보루스 2세로 선포했다. 시보루스 2세의 처음 9년의 통치 동안, 앤도라크에 충성한 사람들은 제국 군대와 싸웠다. 대현자 에라인테인의 "타이버 셉팀의 심자의 더 이상 뛰지 않는다."라고 외친 행동에 평의회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하이록의 쇼른헬름 왕국을 인정했으며, 그리고 앤도라크의 자손들은 지금까지도 그곳을 지배한다.
대체로, 시보루스 2세는 앤도라크보다 주의가 필요한 적이 더 있었다. 데라인테인의 이야기 "음산한 악몽에서"를 보면, 스스로를 카모란 어서퍼 라고 불렀던 남자가 데이드라와 언데드 전사를 이끌고 왕국과 왕국을 정복하며 발렌우드 전역에서 날뛰며 돌아다녔다. 극소수만이 그의 맹공에 저항 할 수 있었고, 그 달은 3E 249년에 피의 달로 바귀었으며, 그 저항마저 점점 줄어들었다. 시보루스 2세는 어서퍼의 북진을 막기 위해 바머펠로 용병들을 더 많이 보냈지만, 그들은 매수되거나 살육되어 언데드로 부활했다.
카모란 어서퍼의 이야기는 책으로 둘 가치가 있다.(더 자세한 것이 알고싶은 독자에게는 파라욱스 아일드레의 어서퍼의 몰락을 추천한다.) 그러나, 요약하자면 어서퍼의 군대의 멸망에 황제의 노력은 거의 없었다. 결과는 위대한 지역적 승리와 무기력해보이는 황제에 대한 적개심의 증가였다.
시보루스 2세의 아들이자 후계자, 유리엘 5세는 제국의 잠재적인 힘을 되돌려 평판을 전환시켰다. 유리엘 5세는 타므리엘의 관심을 내부의 분쟁에서 다른 곳으로 돌려, 그가 3E 268년에 권좌에 올랐던 순간부터 시작한 잇따른 침공을 이끌었다. 유리엘 5세는 271년 로스크레아, 276년 캐쓰노퀘이, 279년 야네슬레아, 그리고 284년에 에스로니엣을 정복했다. 3E 288년, 그는 그의 가장 야심찬 계획, 아카비르 대륙 왕국 정복에 착수했다. 최종적으로는 유리엘 5세가 아카비르의 아이오니쓰 전장에서 죽음으로서 실패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리엘 5세는 제국의 위대한 두 무인 황제 중 한명으로 타이버에 다음 가는 명성을 얻었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인 제 4권에서는 유리엘 5세의 어린 아들에서 시작해서 최근 네명의 황제까지 기술했다.
<간략한 제국 역사 4권(마지막) - 저자 : Stronach K'Thojj 3세 (임페리얼 역사가)>
이 시리즈의 제 1권은 타이버 1세에서 시작한 셉팀 왕조의 처음 여덟 명의 황제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제 2권은 붉은 다이아몬드전쟁과 그 후의 여섯 황제에 대해 기술했다. 제 3권에서는 다음 세 황제, 좌절한 유리엘 4세와 무기력한 시보루스 2세 그리고 영웅적인 유리엘 5세의 고난을 기술했다.
유리엘 6세 황자가 먼 바다건너 적지 마카비르에서 사망했을대, 유리엘 6세는 겨우 다섯 살 이었다. 사실, 유리엘 6세는 그의 아버지가 카마비르로 떠나기 얼마 전에 태어났다. 유리엘 5세의 다른 자손은 재산과 신분을 요구하지 않는 조건으로 한 평민과의 결혼에서 그가 아카비르로 떠나기 한달 전에 태어난 모리하사와 에로시아[ㅡ.ㅡ;;; - 옮긴이] 쌍둥이 자매 뿐이었다. 유리엘 6세는 세 번째 시대의 290[얼래.. 앞에서 나왔던 게... 마흔이지 아흔이지...? 왠지 이거랑 안맞는듯..? - 옮긴이.]번째 해에 황위에 올랐다. 그의 어머니 토니카 황태후에게는 유리엘 6세가 성년이 될 때가지의 제한적인 섭정권이 주어졌다. 장로 평의회는 카사리아 1세의 시대에 손에 넣었던 실제적인 권력을 계속 유지했다.
평의회가 법을 선포에 대한(그리고 이익을 발생시키는 것에 대한) 무제한적이고 한 없는 자유를 누렸기 때문에 유리엘 6세는 307년, 이미 스물 두살이 되었을 때가지도 통치권에 대한 완전한 승인을 받지 못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천천히 책임 있는 지위를 손에 넣었지만, 평의회와 제한적인 섭정권을 누리고 있는 그의 어머니, 양쪽이 지배권을 넘겨주려하지 않았다. 그가 권좌에 오르게 되었을 때도, 정치 기구는 그에게 황제의 거부권 말고는 거의 권력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힘을 그는 철저하고 활발하게 행사하였다. 313년에 유리엘 6세는 정말로 타므리엘을 지배했다고 확실히 호언 할 수 있었다. 그는 까다로운 장로 평의화 회원드를 겁주고 지배하기위해 존재하지 않는 스파이 망과 근위대를 이용하였다. 그는 이복 동생 모리하사(당연하지만)는 그의 가장 든든한 아군이었다. 특히 그녀가 윈터홀등의 울페 그리슨 남작과의 결혼으로 주목할만한 영향력과 부를 얻은 뒤에는 더욱 그러했다. 현자 유갈리지는 "유리엘 5세는 에스로니엣을 정복했지만, 유리엘 6세는 장로 평의회를 정복했다."라고 했다.
유리엘 6세가 말에서 떨어져 가장 뛰어난 의원들도 소생시킬 수 없게 되자 그의 믿음직한 여동생 모리하사가 황제의 관을 손에 넣었다. 25살 때 그녀는(틀림없이 이기적인) 외교관들에 의해 타므리엘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이라고 평가되었다. 그녀는 확실히 교양있고, 활발하고, 발랄하고, 그리고 잘 훈련된 정치가였다. 그녀는 스카이리움의 아크매지스터를 제국 수도로 데리고 왔으며, 타이버 셉팀 시대 이래 두번재로 황실 베틀메이지로 봉해졌다.
모리하사는 그의 오바가 시작한 과업을 끝마쳤고, 임페리얼 지방을 여제(그리고 나중에는 황제)의 실제적인 지배권 아래 놓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임페리얼 지방 바깥 쪽에서 황제 지배권은 천천히 붕괴되고 있었다. 공공연한 혁명과 내전은 그녀의 할아버지 시보루스 2세 시대 이래 도전 받지 않은 제 명위 를 떨쳤다. 모리하사는 항상 스스로 지나친 확장을 피하며 조심스럽게 조정된 반격으로 반란하는 봉신들의 반란을 천천히 요구했다.
비록, 모리하사의 군사행동은 매우 성공적이었지만, 그녀의 사려 깊은 행보는 종종 평의회를 초조하게 했다. 자신을 괴롭히는 블랙마쉬에 대한 여제의 파병 거붕에 펄펄 뛰던 써리클스 로무스라는 콜로비안 이름을 가진 한 아르고니안 의원은 3E 339년에 빼앗아간 암살자들을 고용한 사람이라고 의심을 받았다. 로무스는 마지막까지 그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즉각 재판에 회부되어 처형되었다.
모리하사는 자식이 없었고, 그녀의 상둥이 자매 에로시아는 4년 전에 열병으로 죽었다. 그리하여 에로시아의 25살 먹은 아들 페라지우스는 페라지우스 4세로 황위를 이었다. 페라지우스 4세는 그의 이모의 과업을 계속했고, 천천히 그의 날개 아래로 급진적이고 다루기 힘든 왕국, 공국, 그리고 제국의 영지를 그의 날개 아래로 천천히 되돌렸다. 페라지우스 4세는 그의 시도를 통해 모리하사의 균형있고 용의주도한 행보를 연습했다. 아아!, 그렇지만 그는 그녀의 성공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심지어 온화한 황제의 존재조차 탐탁지 않게 생각 했을 정도로 왕국들은 너무 오랫동안 속박에서 자유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라지우스가 놀라운 46년가의 통치 뒤에 죽었을 때, 타므리엘은 유리엘 1세의 시대로부터 그래왔던 것 보다 더 긴밀하게 단결했다.
페라지우스 4세의 아들이자 우리의 현재 황제이며 황공하고 근엄하신 폐하 유리엘 셉팀 7세는 외종조모 모리하사의 근면함과, 외종조부 유리엘 6세의 정치적 수완, 그리고 외종조부 5세의 군사적 용맹을 가졌다. 그는 21년간 통치했으며, 타므리에에 정의와 질서를 가져왔다. 그렇지만 3E 389년 그의 황실 베틀메이지인 자겔 타번이 배신했다.
유리엘 7세는 타번이 창조한 차원에 갇혔고, 타번은 환영 마법을 사용해 황제의 외모를 가장했다. 그 후 10년 동안 타번은 황제의 특권을 남용했지만 유리엘 7세의 재정복 계획은 지속시키지 않았다. 타번의 목표과 개인적인 성취가 무엇인지는 아직 완전히 알려지지 않안지만, 그는 10년 동안 그의 군주로 가장했다. 3E 399년, 한 수수께끼의 전사가 황궁의 던젼 안에서 베틀메이지를 쳐부수고 유리엘 7세를 다른 차원의 감옥에서 해방시켰다. 해방 이후, 유리엘 셉팀 7세는 타므리엘을 재결합사키라는 마음을 재개하려고 애썻다. 타번의 방해가 추진력을 깨트린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때 이후 수년은 타므리엘을 영광스럽게 한 타이버 셉팀의 통치와 같은 황금 시대에 대한 또 한번의 희망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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